여행

[스크랩] 2,000리 걷고 와서(22)

포동입니다 2007. 12. 14. 22:27

 

2007년 10월 9일(25키로 걸은날)

 

혼자 걸을 때에는 눈만 뜨면 배낭지고 떠나서, 허기지면 초코바 씹다가 재수좋게 바르라도 만나면

빵 쪼가리나 감자 오므렛과 커피로 배를 채웠는데,


오늘은 집사람이 있기 때문에 식당에 내려가 어제 준비했던 빵과 오렌지와 우유로 요기하고 

     

7시 25분이 되어서야 출발했지만 스페인은 일광절약시간제를 시행 함으로 아직 칠흑 같이 어둡다.

 

마을 어귀로 나오니 바르가 불을 환하게 밝히고 문을 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이곳에 와서 따뜻한 커피 마시며 아침 먹는 건데...

 

마을을 떠나 출렁거리는 철다리를 건너면, 곧, 제법 가파른 참나무 숲길이 시작된다.

사리아와 산띠아고 사이에서 제일 길고 가파른 언덕길로 생각되는 이 숲길은, 12세기 순례안내서

( Aymeric Picaud's Guide)에는 유명한 야외 창녀지역 이라고 써 있단다.

 

앞을 올려다 보니 전지 불이 줄을 잇고 있다.
사리아 부터 순례자가 부쩍 늘어 난다는 말이 실감 난다.

 

10시경 곤사르(Gonzar)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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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레오 도 수없이 지나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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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이 되었는데도 안개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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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삐딸 다 끄루스(Hospital da Cruz)의 바르에서 커피 마시고, 아스팔트 길도 끝나서 아일랜드

식으로 돌담장 친 작은 목장지대의 걷기 좋은 흙길을 걷는데도,

 

12시 경이 되자 집사람이 잘 걷지를 못하고 뒤로 쳐지기 시작한다.

 

평소 등산도 잘 다니고, 신발도 두 치수 큰것으로 준비하여 매일 한시간 이상 연습했고, 양말도 3켜레나

신었지만 그정도의 훈련으로는 까미노 걷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 피부의 특성이 사람 마다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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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마신 우유가 변질된 것 이었던지, 배도 아프다고 함으로 돌 담장이 무너진 곳을 찾아 목장에

들어가 돌 담장 뒤에서 일 보도록 한 뒤,

 

집사람의 배낭에서 침낭(680그램), 판쵸(440그램)와 방풍 자켓(520그램)을 꺼내서 내 배낭에 꾸려

넣고, 아주 천천히 걷는데 매우 괴로운 표정이다.

 


<<우리집사람 일 본 얘기를 했으니, 지저분한 얘기지만
서양 사람들의 일 보는 행태에 대해서도 얘기 좀 하고 싶다.>>

 

((서양인의 일 보는 행태에 대하여 내가 관심을 두고  관찰한 것이 아닌 만큼 눈에 보인것 만  말 하겠다.

 

서양 남자들은 각도만 틀고 일 보는 녀석들이 더 많았지만 숲속으로 들어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여자들은 무서워서 그러는 지는 몰라도 용감(?)한 경우가 더 많았다.

 

우리나라 사람은, 특히 여자는, 몸의 일부분, 즉, 머리카락 이라도 남이 볼 수 있으면 절대 일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 에서는 빤히 보이는 곳에서 일 보는 여자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지난번에 나 혼자 걸을 때 당한것(?) 인데, 특히 우스꽝 스럽고 이상 야릇 했던 광경 하나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여자가, 빤히 보이는 곳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선 자세에서 허리만 기역자 형태로 구부리고 일을

보는 것이 아닌가? 쪼그리고 앉지를 못하는것 같았다. 정말 기괴했다.

 

한번은 한적한 길섶에서  벼란간 여자 한명이 불쑥 튀어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독일에서 왔다며 태연히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다니까  남한이냐 북한이냐를 묻는다.

 

지금까지 경험상 남/북 묻는 사람들 과는, 말하기 위한 말 밖에 할것이 없어서 조금 짜증 스러웠기

때문에 그럼 너는 동에서 왔냐, 서에서 왔냐 만 묻고 꼴도 보기 싫어서 앞서 가 버렸다.

 

일을 보다가 무안하면 내가 지나간 다음에 나올 일이지 앞으로 튀어 나올 일은 아닌데...

뻔뻔 스럽기는...  각설하고,

 

까미노에서 생리적 욕구가 있을 경우 바르가 나올때 까지 기다리기는 쉽지가 않다. 따라서 적당히 해결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위에 말한 사람들같이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서로 눈감아 준다,

 

야외에서 일 볼때, 잡초가 너무 우거진 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에도 독풀이 있드시 외국에도

독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로 만든 향로와 가위를 벽에 붙박아 놓은 집을 보며 우리나라의 부적 붙이는 풍습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쉬엄 쉬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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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길옆에 달랑 나타난 리곤데(Escuela de Ligonde)의 공립 알베르게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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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레세(Airexe)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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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임박한 환자 같은 표정을 짓고 앉아 쉬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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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도 벗었다가 다시 신으며 엉금엉금 가다가 길옆 쉼터에서 쉬고 있는데 스페인어로 떠들며 지나가던

한 무리의 순례자 중에서 중년 여인 두명이 떨어져 나와 영어 하느냐고 묻는다.

 

자기들은 미국에서 왔으며 오늘은 리곤데의 알베르게에서 묵을 예정 이었는데, 모르고 지나 첬다며

빠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는다.

 

3키로 정도 남은것 같은데, 그곳 못 미처에 새로운 알베르게가 생겼다는 글을 최근에 읽었다고 하자,

조금이라도 가까운 그곳에서 쉬겠다며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한다. 스페인 사람들과 영어가 안 통해서

답답 했었던 모양이다.

 

힘겹게 걸어가는 그들의 뒷 모습이 측은 했지만. 아무것도 도와 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까미노 걸으면서 그렇게 많이는 못 만났지만 미국인들의 짐이 제일 무거운 것 같았다. 첫날 피레네 산맥

오를때 태권도 검은띠 라는 미국인을 만났는데 앞뒤로 멘 두개의 배낭 무게가 35키로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얘가 정상인가? 하고 머리를 갸우뚱 했는데,  그래도 식식 거리며 이틀간 쫓아오며

말을 거는 모습이 귀엽기 까지 했었다.

 

까미노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먹을것, 마실것, 의약품, 심지어 돈까지 물질적인 것은 얼마든지 나눠 줄 수 도 있고, 정보, 위안, 용기등

정신적인 것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으나. 체력 만큼은 보태줄 방법이 없다.

 

빠라스 데 레이 초입의 성당 : 성당들은 대게 문이 닫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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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경 빠라스 데 레이의 사설 알베르게(Albergue Buen Camino)에 도착해서 우선 손동작 써가며

세탁기가 있느냐고 물어 보니 대답하는 태도로 보아 있다고 하므로 체크인 했다.

 

숙박료로 9유로씩 18유료 내니까 전표 두장을 주는데 전표에 크게 써있는 1유로 는 알아 보겠는데

나머지 조그만 글자는 스페인어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생각해 낸 결론 : 식사 할인 전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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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은 방에 들어 서자  마자 자리에 눞는다. 발을 살펴보니 물집이 심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총 동원해서 치료(?)했다.


다른사람들은 물집에 바늘로 실을 관통 시켜서 실을 타고 물이 빠지도록 하지만, 나는 샤워후 물집을

가위로 찢고 아프도록 물을 짜낸 뒤 컴피드를 붙이고 컴피드가 이동하지 못 하도록,손바닥 만큼 크고

공기 구멍 뚤린, 반창고로 부위를 감싸준다.

 

집사람 발 처치한 뒤에, 카운터에 가서  3유로 내고 토큰 사서 세탁기 돌려 놓고 밖으로 나가,야외

테이블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쉬고 있는데,

 

오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오던 네델란드 무리 5-6명이 나와서 또 떠들기 시작한다. 사리아 부터

걷는 다는  40대의 이들은 영어도 잘 하고 친구 사이 인 것 같으며 짐은 택시로 보내 버리고, 간식 배낭

 

만 지고 다니면서 소풍나온 아이들 같이 유별나게 큰 소리로 떠들고 다닌다. 일행중 한명의 발이 우리

집사람 처럼 벌써 고장이 났는지 자주 쉬며 치료하고 간식을 먹기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

 

유럽에 산다면 이들처럼 가볍게 단거리 까미노 하며 즐기는 것도 좋겠다.

 

조금 있으니까, 카나다 퀘백에서 온 가족 일행 6명과 어제 "내 차"를 부르짓던 스페인 청년 등도 나와

인사한다. 특히 스페인 청년은 오늘도 새로운 아가씨 에게 수작 중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마음 속으로

"바람둥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알베르게는 3층 건물로서 1층은 음식 팔고 2,3층을 숙소로 쓰는데 침대도 비교적 깨끗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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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하면서도 투숙객이 취사할 수 있는 별도의 주방 시설과 기구를 거의 모두 갖춰 놓았으며, 주변에

수퍼도 있어서 취사하는  사람들 에게는 적당한 곳으로 느꼈다.

 

발이 아파 내려 가기 싫다는 집사람을 억지로 이끌고내려가 오늘의 메뉴로 저녁을 먹는데 식단도 단조

롭고 맛도 별거였다.

 

거의 다 먹었을 때 퀘백 가족 여섯명이 들어와서 옆에있는 식탁에 앉았는데 말이 안 통해서 우왕 좌왕

하므로, 먼저 먹어본, 내가 도와 주었다.

 

첫번 코스에는 무엇과 무엇만 있고 두번째 코스에는 무엇과 무엇 밖에 없다고 가르쳐 주며 속으로 생각

했다. '스페인 말 한마디도 못 하는 놈이 까미노 하다보니 눈치만 늘었네...' 그래도 고맙다는 얘기는

들었잔니?

 

가이드북에 양조장에서 대량생산 되어 상표를 붙인 오루호 말고, 집에서 양조한 상표없는 오루호를

맛 보라고 했으므로 동네 조그만 구멍가게에 가서 안내서에서 읽어본 대로 오루호를 찾으니 카운터

 

밑에서 상표도 안 달린 술 두병을 꺼내 놓고 설명하는데, 가이드북에 써 있던 내용에 따라 눈치로 알아

들은 것은, 맑고 독한 것은 바르에서 마시는 것이고, 푸른색의 허브 냄새나는 것은 집에서 마시는 것

이란다.

 

지금까지 사서 마신 양조장 오루호는 8-10유로씩 했는데 이것은 두종류 모두 3유로 씩 밖에 안 한단다.

푸른색 한병 사다가 마셔 보고, 나머지는 페트병에 넣었다.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 주렁 주렁 걸어놓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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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이야기>>

 

((작년(2006년)에 까미노에 빈대(Bed Bugs)가 창궐한 적이 있어서 대대적인 구제작업이 있었다 한다.

금년에도 빈대에 심하게 물려서 고생한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그 후에는 빈대 얘기가 없는 것을

 보면 지금은 빈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빈대는 구제가 비교적  용이한 것이므로 빈대를 보거나, 빈대에 물렸을 경우 관리자가 빨리 구제작업을

하도록 오스삐딸레로에게 얘기하고 소문을 내는게 좋을 것이다))

 


<<인터넷 활용>>

 

((일행이 여러명일때 상황에 따라 서로 떨어져서 걷는 경우에도 유럽인 들은 쎌폰으로 서로 연락하며

걷는 것을 보았다.

 

숙소에 인터넷은 거의 설치되어 있으나 한글 도메인이 안 뜨는 경우가 많아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실용성이 떨어지므로, 한글 도메인 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까미노 걷는 동안 만이라도 핫메일이나

야후 등에 영어 계정을 만들어 서로 연락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영어 문장이 잘 안 써지면 한글 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해도 의사 소통은 할 수 있을테니까.))

 

출처 : 해외유랑
글쓴이 : 유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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